Tuesday, March 1, 2011

영화인 홍상수 - 낯섦 속의 발견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홍상수 감독은 9번째 영화를 내놓았다. 감독의 강한 인장으로 인해 언제나 비슷비슷해 보였던 그의 영화는, 어느새 첫 작품으로부터 꽤 먼 지점에 다다랐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09)도 ‘한 남자의 여행과 만남’이라는 면에서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유머는 좀 더 넉넉해졌고 그 분위기도 더 온화해졌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장독론’을 이야기했다. “저는 장독에 물이 가득 차서 넘칠 때쯤 되어야 다른 장독으로 옮기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은 그가 하나의 독을 거의 다 채워가는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홍상수 감독에게 영화는 늦게 찾아왔다. 방황하던 시절, 주변의 지인은 홍상수 감독에게 연극 연출가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는 그렇게 연극영화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2학년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다. 시카고 예술대학(Chicago Art Institute)에서 보낸 3년은 홍상수 감독에겐 특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극영화를 만들려 했으나 어려움을 느끼고 실험영화를 시도하던 시기, 이때 본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시골 사제의 일기>(50)는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였고, 저에게 내러티브 영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켰죠. 브레송이 쓴 <시네마토그래피에 대한 단상>이라는 책은, 영화라는 매체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고요.”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칼 드레이어, 장 르누아르, 에릭 로메르, 루이스 브뉘엘 같은 영화 작가들의 작품들을 비롯해, 당시 접했던 폴 세잔느의 그림과 앙드레 지드, 안톤 체홉, 도스토옙스키, 알베르 카뮈, 장 폴 샤르트르,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의 문학 작품은 그에게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스무 살에 영화과에 들어가 10년 넘게 ‘학습’의 시간을 가진 셈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조급하진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그에겐 꽤 긴 준비 기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그 무엇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다른 것은, 그 ‘과정의 다름’ 때문이다. 일반적인 영화 만들기가 시나리오에서 시작된다면, 그는 시나리오 이전 단계인 트리트먼트(treatment)에서 멈춘다. <오! 수정>(00)까지는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생활의 발견>(02)부터 그는 새로운 영화 작법을 발견했다. 20~30페이지 정도 되는 트리트먼트가 주요 인물이나 장소 같은 큰 방향은 잡아주지만, 캐스팅이 되어 배우와 만나고 로케이션 헌팅에서 실제 장소와 맞닥트리면서, 계속 자극을 받고 그것은 그의 영화에 살을 붙인다. 그리고 그는 촬영 당일 아침에 그날 찍을 분량의, 토씨 하나까지 꼼꼼하게 체크된 시나리오를 쓴다. “미리 다 알고 있는 걸 찍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전체적으로 10을 만들어야 하는데 촬영 전에 알고 있는 게 5라면, 아침에 쓸 때 4, 그리고 촬영할 때 1을 더해서 10을 만드는 거죠.” 그러기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촬영하는 그 기간 동안의 ‘발견’이다. “저는 그날그날 무엇이 발견되어 그것이 과정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그렇지 않다면 뭐랄까… (영화를 찍는다는 게) 할 필요가 없는 짓?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런 방식은 현장에서 극도의 집중력을 요하며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지만, 홍상수 감독은 어느새 그런 방식에 익숙해졌다. “완벽하게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황에서 색칠만 한다면, 하루이틀은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만날 그러진 못할 것 같아요. 밑그림을 매일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힘들죠.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항상 나쁜 건 아니잖아요? 자신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다면요.” 홍상수 감독은 현장에서 ‘과정’을 신뢰하며 ‘발견’이 주는 힘을 믿는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결과물을 철저히 ‘과정’에 맡긴다. 그는 자신의 의도 및 주어진 요소와,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포착한다.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그 결과물은 모두 나다울 것이고, 그 과정을 충실히 지나가다 보면 그게 사실은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극을 주는 요소는 아무래도 배우다.



 

홍상수 감독에게 배우는 단지 시나리오의 지문과 대사를 충실히 옮기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캐스팅 전에 생각했던 것을 다 고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배우를 만난다. “50퍼센트 정도 구체화된 캐릭터라고 할 때, 어느 배우 만났는데 무슨 생각이 나면 그 50퍼센트도 다 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나요.”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수많은 배우들은, 자신들의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홍상수 감독은, 배우가 주는 어떤 느낌을 ‘맥’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그 배우의 작은 행동이나 눈빛, 말투 같은 것이 그가 아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그것이 그 배우에 대한 온전한 수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감독으로서 그 사람 속에서 뭔가를 잡아내려고 하니까 보이는 어떤 것이죠. 빨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맥’이 잡히는데, 그것이 내가 막연히 준비한 것과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오면 ‘함께 해보자’ 하는 거고요. 그런데 그 느낌이 안 오면 자신이 없어서 못해요.”

그렇다면 그의 캐릭터들은, 배우에 의해 떠올려진 ‘아는 사람’들이 그대로 화면에 옮겨진 것일까? 가끔씩은 너무 리얼하고 일상적인 캐릭터의 모습에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 홍상수 감독은 “결국은 아는 인간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름의 원칙은 확고하다. “모델이 됐던 여러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을 못해요. 중심 모델이 있어도 보조 모델들을 섞어서 바꾸죠. 그리고 어느 배우를 캐스팅하면 그 배우 자체가 강력한 모델이 되거든요. 배우가 촬영 과정을 통해 저에게 주는 힘이 있고 영향이 있어요.” 그리고 홍상수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영화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의 영화 대부분이 ‘영화계’와 겹쳐 있는 건 그런 이유다. “저는 소재 선택에 있어서, 그 안에서 뭐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가지고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제 생활 반경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영화감독이고 배우고 소설가잖아요. 저는 그걸, 피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 제가 상투적이거나 자극적으로 그런 소재를 이용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제가 풍요롭게 다룰 수 있는 소재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들을 주변 인물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거리’를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저에게 몇 안 되는 원칙 중 하나가 ‘너무 가까우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깨달은 것. 실제의 것을 너무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하다 보니, 내면의 무의식이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게 했다. “너무 부자연스러워지고,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여기서 또 하나 언급할 부분은 대상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관찰’에 대한 의미다. 이 과정은 그의 영화적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는 대상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오고, 그 과정을 통해 다시 대상으로 나아간다. “저는 어떤 대상을 보면, 바로 제가 사고하는 구조를 보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있나, 내가 왜 이렇게 반응을 하나…. 그 반응이 관심사가 되는 거죠.” 그는 그러한 생각이 ‘몸’ 안에서 일어나며, 몸의 변화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는 것에 따라 자신의 영화가 서서히 변해간다고 말한다. “바깥을 보고 저를 보고, 좀 더 명료해지면 다시 바깥을 보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시간이 있으니까 변화가 생기고, 주변 인물들이 그 시간마다 다르게 포착되는 것 같아요. 그 포착되는 강도나, 표현하려는 자세도 달랐던 것 같고. 그런 과정이 그대로 영화에 배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이것은 내면의 억압이 조금씩 풀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는 영화를 시작할 때, 사춘기적 나이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거든요. 안에서 굉장히 헝클어져 버린 것? 억압이 결정화된 것? 그러다가 큰 것이 풀리고, 거기에서 파생되었던 작은 억압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걸 보게 되면서, 점점 현재의 나에게 가까운 곳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최소한의 거리가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요.”

결국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억압을 풀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억압이 있잖아요. 매일 그렇게 살아나가다 보면 그 억압을 풀 겨를이 없는데, 예술가의 축복이라면 남들 일할 시간에 그걸 쳐다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잘 형상화하면, 저와 공감할 수 있는, 비슷한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 작품이 뭔가를 줄 수 있겠죠. (자신의 억압을) 거리감을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고. 괜히 쓸데없는 데 시달렸다는 자극을 줄 수도 있고요.” 대상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다시 대상에 투영하면서, 좁게 보았던 대상을 조금씩 넓게 보는 과정은 홍상수 감독에게 있어 “영화를 통해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결과물인 ‘영화’를,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을 살펴보면, 유난히 시간(‘날’ ‘생활’ ‘미래’ ‘밤’ ‘낮’)이나 공간(‘강원도’ ‘극장’ ‘해변’)에 관한 단어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 시공간은, 영화의 중심 요소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적 시간은 삶에서 일정한 시간대를 뚝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것은 영화에서 시간을 다룰 때 생기는 상투성을 없애기 위한 설정이다. “다루는 시간이 길면 어떤 부분을 선택해야 하고, 그 점프의 느낌이 클수록 설명을 위해 상투적 표현이 필요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시간적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거죠. 저는 시간대가 뚝 잘라져 있으면, 선택의 손길이 잘 안 보여서 좋아요.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인물들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적인 행동들이 정당화되고, 그 행동들 사이의 미세한 것들을 쳐다보도록 은근히 강요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편 그에게 공간은 배우의 행동과 생김새, 옷차림, 날씨, 주변의 소음 같은 요소와 구분될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뭉개져서 형성되는 분위기에 감독은 직감적으로 다가간다. 여기서 경제성을 고려하고 상투성을 배제하면서, 중심적인 것을 놓고 나머지를 하나씩 배제해 나갔을 때 남는 그 무엇을 카메라에 잡게 된다. “딱 그곳 외엔 없는 것처럼 오는 게 있어요.” 여기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미지다. “장면 자체의 중요한 요소들을 새롭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미 봤던 것을) 덧씌우는 앵글이 되면 안 돼요. 흔히 말하는 ‘멋있는’ 앵글이라는 건, 본 것이 환기되어 멋있다고 얘기하는 거니까요. 그것이 덧씌워지는 순간, 원래의 생생한 요소들이 힘을 발휘하는 데 막이 덮이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게 싫은 거예요. 그게 없어질수록 저에겐 예쁘고 귀엽게 보이는 거고.” 그래서 그가 기존의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건 그 ‘태도’에 관한 것이다. “제가 세잔느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영화에서 그의 그림을 모방하는 건 아니죠. 제가 나름대로 추측하는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그렸을까’라는, 화가의 마인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파악된 태도나 작업 정신에 대한 영화적 구현과 실행. 그러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그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원동력을 이야기한다면 바로 ‘관객’이다. 구체적으로 누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친구”일 수 있는 그들의 존재가 있기에, 그는 영화적 표현에서 밸런스를 잡고 나름대로의 계산을 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부딪히고,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그러면서 그 반응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과정, 그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앞뒤로 붙어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특히 그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굉장히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제가 (영화라는) 아이를 낳았는데, 무대 위에 세워야 하는 거죠.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예쁜 옷도 입히고, 말투도 교정시키고, 사람들이 귀여워할 만한 행동도 가르쳐요. 저는 아이가 그냥 속 편하게 크길 바라니까, 밖에서 놀다가 올라가서 그냥 네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고 내려오라고 그러고요. 그러면 관객들은, 말도 잘하고 귀여움도 잘 떠는 아이를 더 좋아할 수도 있겠죠. 제 아이를 보면서는 ‘쟤 너무 준비를 안 한 것 같아. 부모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야?’ 그럴 수도 있는 거고요.(웃음)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스스로 크게 맡겨놓는다는 거죠. 그런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다지 꾸미진 않지만, 감독의 내면과 현장에서의 과정이 그대로 투영된 영화. 그 안에서 관객들이 각자 이루는 ‘생활의 발견’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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