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폭발적 흥행은 그런 파격을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었다. <서편제>(1993)의 기록을 깨며, <타이타닉>(1997)의 한국 관객수마저 돌파하며, <쉬리>는 전국에서 58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의의는 숫자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한국영화는 묘한 자신감에 휩싸였으며, 영화 자본은 급격한 변동을 겪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응이었다. 분단 상황에서 펼쳐지는 리얼한 액션 영화에, 관객과 평단은 물론 정치권마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부 각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이 영화를 관람했고, 당시 어느 국회의원은 “DJ의 햇볕 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 말했으며, 국방장관은 “느슨해질 수 있는 장병들의 대적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 영화를 적극 활용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퇴행적 민족주의라는 평가도 있었다. 철저히 장르 영화를 기획했던 강제규 감독은, 이러한 ‘소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 영화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다가온다면, 반은 내 잘못이고 반은 우리가 처한 현실 때문입니다.”
유사 할리우드 전략. “파이를 늘려야 한다” <쉬리>가 개봉했을 당시 <씨네21>의 20자평을 읽는 건 꽤 흥미롭다. 네 명의 평자의 별점 평균은 세 개 반(다섯 개 만점).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이 영화가 지닌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사 할리우드 영화’로 오리지널 할리우드 영화를 이기는 실용주의 전략(강한섭)” “액션과 미스터리, 멜로를 알맞게 배합한 흥행 폭탄(박평식)” “한국 관객만 보기는 아까운 감성 첩보영화(유지나)” “상업주의 전략을 완성시킬 줄 아는 장인들의 영화(이명인).” <쉬리>는 장르와 상업성과 한국적인 것이 황금비율로 배합된, 거의 완벽한 상업영화였던 셈이며 6백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수는 그것을 증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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