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인 한석규 - 평범한 얼굴의 힘


 



 
언젠가 영화월간지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한석규는 “당신은 다음 세기에 어떤 배우로 남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에게 영화는 추억이에요. ‘1970년대에는 어떤 영화에 어떤 배우’라고 떠오르는 식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1990년도부터 2000년 이후 몇 연도까지 한국영화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품들의 목록을 댈 때, 몇 연도 하면 ‘그때는 그 배우가 그런 작품에서 좋았지’라고 떠올릴 때 그게 저였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한 방법론에 입각하면, 1980년대가 안성기의 시대였다면 한석규의 화양연화는 1990년대, 좀 더 세분화하면 1990년대 중반부터 1999년까지였다. 그 사이에 박중훈과 최민수와 문성근이 있었고, 한석규 이후엔 이른바 ‘빅 3’였던 최민식과 송강호와 설경구가 있다. 이 지형도에서 한석규는 조금은 이질적이다. 안성기가 시대의 요구에 호응하며 변하는 무채색이었다면, 박중훈과 최민수가 한층 밝고 강렬한 명도의 컬러였고, 문성근이 이전엔 없었던 새로운 색을 보여주었으며, ‘빅 3’는 관객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원색이었다. 그렇다면 한석규에겐 한지의 탈색된 느낌이 있었고,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한석규의 감성은 과거 지향성에서” 나왔다.

이 시기 그의 영화에선 항상 어쩔 수 없는 가족과 오랜 친구와 옛 연인이 중요했다. 그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힘겨워하고, 엄연히 ‘가족의 일원’임이 강조되며, 과거의 사랑 때문에 현재를 저당 잡히고, 시한부의 삶을 살아갔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모습은 IMF 시대 한국인들의 처지와 겹쳤다. 스타덤에 오르려 야망을 불태우다 단명하는 배우와 달리, 한석규는 자연스레 다가와 조용히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위로했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은, 그가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느리지만 꾸준히 걸었기에, 그다지 숨 차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였던 한석규는 원래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자의 꿈을 품었고(여기엔 둘째 형인 한선규의 역할이 컸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무대에 서며 연기의 맛을 알았고, 선배들의 칭찬 속에 자신감도 가졌으며, 2학년 땐 강변가요제에도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했고, 제대 후엔 단편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의 대학 생활은 나름 알찬 훈련 과정이었다. 1989년에 졸업을 하자 현실은 무섭게 달려들었다. 국립극단 오디션에도 떨어지고, 대학로의 극단에도 문을 두드렸지만 한 달 견디기가 힘들었다. 취직을 생각해봤지만 모두 낙방했다. 1년의 백수 생활 끝에 그는 KBS의 성우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신인 치고는 꽤 인정받았던 방송사 생활이었지만, 그는 목소리와 함께 몸으로도 연기하고 싶었다. 다음해 MBC 탤런트 시험에 합격한 한석규. 만 27세였으니 나이 제한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셈이었다.



그의 첫 작품은 <베스트극장>의 사극 <달>(1991)이었다. 최민수와 오연수가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에서 그는 가마꾼 역할을 맡았다. 이때 어떤 선배가 춘사 나운규의 첫 역할도 가마꾼이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한석규의 팬사이트에 있는 ‘나의 청춘 일기’라는 글엔 이런 구절이 있다. “…비록 얼굴이 제대로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고, 대사 한마디도 없는  배역이었으나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나운규 선생이 지켜봐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슬며시 웃음도 나왔다. 그 후에도 계속 단역 출연 제의가 잇따랐다. 물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성악을 꿈꾸었을 때의 발성과 성우 시절에 훈련된 정확한 발음, 그리고 특유의 낙관주의가 만나자 그에게 기회가 왔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MB C)에 캐스팅된 것. 이때 만들어진 단정한 모범적인 이미지는 드라마 <아들과 딸>(1992)에도 이어졌다. 주인공 후남(김희애)의 남편인 석호 역할을 맡은 그는 단역에서 조연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고, 드라마 <파일럿>에 출연한 1993년엔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다. 스물아홉 살에 이룬 성과였다. 그리고 다음해, 그의 트로피는 ‘최우수 연기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영화<음란서생>중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 맡은 ‘제비족’ 홍식 역할은 그가 스타덤에 오른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는 디딤판이었다. “홍식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캐릭터죠. 연기자가 한 역할에 몰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꼈으니까요.” 이후 몇 편의 드라마를 거친 후 그는 첫 영화 <닥터 봉>(1995)과 만난다.

첫 영화가 서른한 살에 개봉했으니 꽤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는 첫 타석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닥터 봉>은 한국영화 중 그 해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것. 당시 트렌드였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그는 바람둥이 치과의사 봉준수 역할을 맡았다.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닥터 봉>은 오히려 그렇기에 선택한 작품인 셈이다. 첫 영화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코믹 캐릭터를 맡았고, 일단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장르적 관습에 젖을 수도 있었던 캐릭터를 “근거가 확실하고 타당성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흥행과 함께 백상예술대상과 춘사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부터 그는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1996),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 송능한 감독의 <넘버 3>(1997), 장윤현 감독의 <접속>(1997),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내리 신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 이어진 <쉬리>(1999)와 <텔 미 썸딩>(1999)도, 이미 첫 작품을 함께했던 강제규, 장윤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며 대부분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선호하는 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신인 연출자의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기운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배우를 함정에서 건져줄 수 있다는 것.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로서 이미지를 어떻게 변주하느냐가 큰 고민인데, 신인 감독들은 그런 고민을 배우 이상으로 함께 해주죠….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적인 눈인데, 신인 감독들이 그런 눈이 되어 줘요.”




그는 승승장구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데뷔작부터 내리 8편의 흥행작을 내놓는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은행나무 침대>에서 관객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계산적인 연기를 했다는 반성을 딛고 만난 <초록 물고기>는, 국내 거의 모든 영화상의 남우주연상 트로피와 함께 그에게 ‘막둥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고, 관객들은 ‘한석규적인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감지하기 시작했다. “막둥이로 다시 태어나 그 인생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그는 ‘자연인 한석규’와 ‘캐릭터 막둥이’ 사이의 공집합을 간파하고, 그 합집합을 통해 확장해간다. <넘버 3> <접속> 등이 이어지는 1997년은 그가 출연하는 세 편의 영화가 각기 다른 느낌으로 관객과 만나며 모두 흥행을 기록했던 ‘한석규 최고의 해’였는데, 다음해 초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저널에선 이른바 ‘한석규 신드롬’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지 그의 흥행 코드를 분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한석규라는 배우가 지닌 독특한 결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뷰어들은 그에게 개런티만큼이나 ‘연기론’을 물었다.

여러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못하다. 종종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에 나오는 “배우는 모름지기 군인과 같은 철저한 규율로 생활해야 한다”는 구절을 이야기하거나, “노력하라. 그리고 또 노력하라”는 라흐마니노프의 좌우명을 들려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과잉’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조선일보>에서 소설가 신경숙과 대화를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 “평생 (연기) 주제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안 할까’예요.” 배우를 보면서 관객들이 “저 배우 ‘연기’하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기. 그는 넘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에서 함께 작업한 곽경택 감독은 “겉으로 표현되는 것 이외에 확 터지지 않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다”고 한석규의 연기를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매력임과 동시에 관객에게 어떤 여지를 남겨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는 “간혹 초보자가 월척을 낚는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낚시를 오래 한 사람이 더 많은 고기를 잡는다”며 오랜 취미인 낚시에 연기를 비유하기도 한다. 한석규에게 연기는 “잘하고 싶어서 평생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못 생기지도 잘 생기지도 않은 외모가 ‘배우 한석규’에겐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콤플렉스가 있어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결과적으로 그의 ‘중립적인’ 외모는 ‘양면성’이라는 큰 선물을 선사했으며, 친근하고 착한 이미지와 비열하고 악한 이미지를 별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는 혜택을 준 셈이다.

하지만, 모든 좋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한석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관객의 내면과 공명하는 감성적인 면이다. 데뷔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생략할 것은 생략하는 굵은 터치의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저는 세밀한 스타일이죠. 그림으로 치자면 르누아르 식이라고 할까요. 부드럽고 얇아요”라며 자평하긴 했지만, 그 섬세함은 전화 부스에서 과거를 추억하고(초록 물고기), 옛 연인을 떠올린 채 상념에 젖고(접속), 창 밖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8월의 크리스마스)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1999년에 <쉬리>와 <텔 미 썸딩>으로 중량감을 더한 한석규는 이후 2003년 <이중간첩>이 나오기까지, 스크린보다는 CF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그리고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된 배우는, 지난 세기의 이미지를 벗고 영화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햇수로 4년 만에 돌아온 <이중간첩>(2003)은 대중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리고 <소금인형> 프로젝트가 제작비 문제로 좌초되면서, 한석규는 배우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주홍글씨>(2004)는 그의 건재함을 다시 확인시켜준 작품. 제작 발표회에서 “최고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편안한 심정”이라고 말한 그는 “전엔 얼굴에서 인생의 쓴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젠 (얼굴이) 조금 쓸 만해졌다고 생각한다”며 막 40대에 접어든 배우로서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20세기에 8편, 21세기에 8편의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현재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이 개봉 예정이다), 한석규의 연기 세계에 대한 담론은 이상하게도 드라마 <아들과 딸>이나 <서울의 달>까지 소급해가며 20세기에 머문다는 점이다. 흥행적 중량감은 덜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번 세기의 영화들은 지난 세기의 영화들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고 끝에 선택한 <이중간첩>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쉬리>보다 진일보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이후 그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드러내는데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5)에선 독재자가 술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1979년으로 돌아간다. 사실 한석규는 예전부터 몇몇 인터뷰에서 “이인모 노인을 연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러한 관심은 21세기가 되어서 구체화된 셈이다.

영화<눈에는눈이에는이>중

그는 이인모 노인과 함께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을 꼽기도 했다. ‘조신 설화’의 주인공인 조신은 ‘욕망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인물. 이 캐릭터는 <주홍글씨>와 <음란서생>(2006)에서 기훈과 윤서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셈이다. 이처럼 최근 한석규의 인물들은 마치 인간 본성의 밑바닥이라도 보려는 듯 강렬해지고 있으며, <구타유발자들>(2006)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 같은 영화는 자신의 캐릭터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21세기 캐릭터들이 20세기 캐릭터들을 이으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식으로 각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스터 주부퀴즈왕>(2005)과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2006)은 <닥터 봉>과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보여주었던 느낌들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영화들이다.

최근 들어 그의 ‘위기’가 언급되곤 했지만, 한석규는 언제나 그랬듯이 성실하게 연기한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오랜 후에 스스로를 뒤돌아봤을 때 창피하지 않은 배우가 되어 있는 것”이라는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는 일.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개봉을 기다리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그가 맡은 형사 캐릭터가, <텔 미 썸딩>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형사와 어떻게 다를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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