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은 한국영화계가 두 명의 감독을 발견한 해다. 먼저 홍상수가 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은 한국영화에 ‘일상성’이라는 화두를 가져왔고 홍상수 감독은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악어>가 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개봉했던, 제작비 3억5천만 원의 영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평단의 반응도 그저 그랬지만, 몇 명의 평자들과 소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의 지지자가 되었다.
하지만 <악어>는, 이후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03) 전까지 6~7년 가까이 치러야 했던 논쟁과 오해의 시작이었다. 정성일의 “어설프지만 주목할 만한 영화, 모든 걸 뛰어넘으려는 영화” 같은 호의적 평가도 있었지만, ‘아마추어 영화’나 ‘강간 영화’ 같은 혹평이 줄을 이었다. 이후에도 저예산 영화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만듦새의 허술함이나, 폭력적인 성 묘사에 대한 비난은 한동안 그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된다. 이어지는 <야생동물 보호구역>(97) <파란 대문>(98)도, 그의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조금 늘어났을 뿐 비슷한 반응이었다. 당시 <씨네21>의 ‘20자 평’은 그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색적 소재의 소화불량 상태”(악어) “한국영화가 세상의 변경이라면 그 변두리 중에서도 한참인 어느 구석에서 만들어진 기막힌 영화”(야생동물 보호구역) “너도 매춘부, 나도 매춘부? 수상쩍은 매춘부 자매애론”(파란 대문)
특히 <야생동물 보호구역> 때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무관심과 혹평에 저항해 일간지 문화부와 영화 관련 저널에 팩스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영화월간지 <스크린>은 김기덕 감독이 보낸 편지의 상당 부분을 책에 실었다. “스스로 수준을 낮춘 관객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어 감독이 되었고, 이미지 영화, 새로운 미장센, 풍부한 시퀀스로 박진감 넘치는 장면 변화, 자칫 어설퍼 보일지도 모르는 생략과 강조, 새로운 소재와 장르 개척 등,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중략) 저는 약속합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관객이 10만 명을 넘지 않으면, 어쩌면 저는 더 이상 영화감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는 관객이 없는 영화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제작자에게 제작비 회수를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이런 영화들을 무시하고 유명 배우가 나오는 코미디나 멜로에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위해 제가 계속 창작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이러한 행동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충무로의 비주류로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콤플렉스와 함께,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파란 대문>부터 상황은 조금씩 바뀐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인 강한섭 교수는 ‘1998년 최고의 영화’로 꼽으며 “성을 이 정도로 깊고 넓게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고 극찬했고,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한국의 비디오 시장에서도 꽤 성공을 거두었다.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의 직접 쓴 글에서 그는 “<파란 대문>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고,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지만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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