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인 송강호 - 대한민국 대표 배우

 


 

송강호가 배우를 꿈꾼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동네에서 그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다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배우 한 번 해봐라”라며 격려(?)하는 친구도 있었다. ‘정말 배우 한 번 해볼까?’ 하지만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5개밖에 없었던 시절. 그는 입시에 실패했고, 다음해 방송연예과에 들어갔지만 영장이 나오자 한 학기 만에 입대한다. 군 복무를 마친 스물세 살의 청년은 복학생이 되기보다는,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을 선택한다. 부산 지역의 어느 극단을 찾았고,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그는 사회 참여적 성격이 강했던 이른바 ‘민족극’에 참여한다. 민족극의 경직된 방식 속에서 그는 답답함을 느꼈고, 이때 만난 작품이 연우무대의 지방 공연 작품인 <최선생>이었다. 1990년 12월이었다. 전교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민족극의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송강호는 이 연극의 ‘방식’에 이끌렸다. <최선생>은 직접적인 구호와 주장이 아닌, 현실적인 감동으로 다가가는 연극이었다. <연우 30년>이라는 책에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연우무대는 내가 지향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연우무대는 연극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고, 송강호는 1991년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연우소극장으로 향했다. 네 번째 상경 만에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올 수 있었고, 단원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이후 연우무대가 주최하던 행사에 일손이 부족했을 때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때 만났던 연출가 이상우는 “연우무대가 네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우무대는 너의 목적을 위해 몸을 담그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송강호를 단원으로 받아주었다(올해 개봉 예정인 <작은 연못>은 이상우의 첫 영화로, 송강호도 참여했다).



단원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송강호에게 기회는 빨리 왔다. 당시 연우무대는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네 편의 연극을 선보였고, 많은 배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송강호는 <동승>의 노인 역을 맡았고, <박첨지>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5년 동안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비언소> 등 10여 편의 연극 무대에 섰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와 만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에 출연중이던 연극계 선배 김의성의 추천으로, 김의성의 동창생들 중 한 명 역할을 맡은 것. “딱 3일 촬영했죠. 낮엔 영화 찍고 밤엔 연극 하고 그러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르바이트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그의 본격적인 첫 영화는 아마도 <초록 물고기>(97)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연극 <비언소>를 보며 송강호를 발견했고, 이상우 선생은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라”며 연극 공연에서도 빼주었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한, 아주 중요한 작품이죠.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영화 연기’에 대해 느낄 수 있었어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때는 3일 출연했던 단역이었기 때문에, 영화 연기가 어떤 것인지 재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던 거죠.” 이후 송강호는 지금까지 오로지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 시작엔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가 있는 셈이다.

같은 해 개봉한 <넘버 3>(97)는 대중들에게 ‘송강호’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지금까지도 성대모사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그가 맡은 ‘조필’이라는 캐릭터의 힘은 대단했다. 그는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한 테이크로 끝냈고, 조필 특유의 더듬는 사투리 말투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다음 해 <조용한 가족>(98)이 이어지며 그의 이미지는 코미디 쪽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틀에서 벗어났고, 이후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기를 관통하게 된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뉘앙스’는 그의 연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어떤 계획이나 의도보다는, <살인의 추억>(03)의 형사 박두만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감’에 의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뉘앙스는 특유의 ‘말 맛’과,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표정 속에 존재하는 미묘한 느낌이 결합되면서 생성된다. 어떤 장면의 어떤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조금은 낯간지럽지만 ‘연기의 비법’ 같을 것을 물었을 때, 조금은 맥 빠지게도 그의 대답은 “그냥 그렇게 툭 연기했다”는 것뿐이다. 그는 캐릭터를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꼼꼼히 분석한다거나 그 배경을 연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연기는 자신감이거든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다면, 캐릭터에 대한 어떤 분석도 필요 없어요. 후배들이 가끔 연기에 대해 물을 때가 있는데, 사실 제가 어떤 해법이나 비법 같은 걸 가지고 연기하는 건 아니거든요. 후배들에겐 그냥 ‘많은 생각을 하지 마라’고 해요.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러면 그 생각 안에 스스로 갇히게 되고요.”

그는 시나리오도 한 번 정독한 후엔 읽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그것은 현장에서 연기자가 발휘할 창의성을 제한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어떤 역할이고 어떤 감정이라는 것 정도는 전체적으로 알고 있어야죠.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지금 찍고 있는 그 장면에 집중한 채,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툭’ 하는 거죠. 다음 장면이 뭐라는 것조차 생각하지 말고요.” 최민식은 <조용한 가족> DVD 서플먼트에서 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감각이 있어도 배우는 일단 몸으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설득력 있게. 그런데 송강호는 그게 완벽하게 표현이 되죠.”

그래서 그는, 형사나 신부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그들과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지낸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는 <나쁜 영화>(97)에서 행려 역할을 맡았는데, 장선우 감독은 행려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행려 생활을 경험하기를 원했지만 송강호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연기라는 건 어떤 모방에서 온다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연기든 자기가 편안하고, 자기 안에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죠. 연극영화과 나오고 공부 많이 하면, 모두 훌륭한 감독,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렇진 않죠. 그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결국 다 자기가 해결해야 할 몫인 거죠.”

유난히 편집실에 자주 가는 습관이 혹시 연기력의 원동력은 아닐까 싶어 질문을 던져도, 섭섭한(?) 대답이 돌아온다. “편집실은… 정말 시간이 남아서 가는 거예요.(웃음) <박쥐>(09) 때도 편집실에 자주 갔는데, 저녁에 박찬욱 감독님과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간 거죠. 하지만 바쁠 땐 못 가요. <우아한 세계>(07)는 다른 작품과 겹쳐서, 편집실에 한 번도 못 갔어요. 제가 ‘작품의 연장선상’ 같은 의미로 편집실에 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전혀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도, 무슨 이유가 있어서 간다는 것처럼 기사를 쓰시더라고요. 으하하하”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강제규 감독의 <쉬리>(99)는 그에게 조금은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송강호는 왠지 잘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보이며, 그는 “강제규 감독님과 영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 실수”였다고 평가한다. 이때 만난 <반칙왕>(00)은, 스무 편에 가까운 필모그래피 속에서 여전히 그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었지만,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이 작품을 끝으로 연기를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영화를 시작한 지 3년 남짓 된 배우에게 ‘원 톱 주연’이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고난도의 레슬링 테크닉을 직접 해내야 한다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제작사에선 다른 배우들을 얘기했지만, 저에게 ‘반칙왕’은 오로지 송강호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송강호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그 어려운 레슬링 테크닉들을 모두 소화해냈고요. 멋진 일이죠. 서른 살이 넘은 배우가, 그런 고도의 기술을 마스터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고요.” 그런 믿음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08)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또 한 번의 멋진 만남을 이루었다.

<반칙왕>으로 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 >(00)에서 박찬욱 감독과 만난다. “이 작품은 저에게 두 가지 의미를 지녀요. 하나는 제가 주류 배우로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박찬욱 감독을 알게 되었다는 것.” 또한 그는 더 이상 ‘코미디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에 대한 믿음은 그의 다음 필모그래피를 채운다. <복수는 나의 것>(02)은 자신이 신뢰하는 감독과 ‘새로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영화. 흥행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복수는 나의 것> 이후 그의 스펙트럼은 확연히 넓어졌고, 송강호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영화적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송강호 스스로 “한국영화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준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살인의 추억>은 그 결정적 계기였다. 호주의 커뮤니케이션&문화인류학 교수인 브라이언 예시즈는 2004년에 쓴 글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적어도 최근 3편의 영화, <반칙왕> < YMCA 야구단>(02) <살인의 추억>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송강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송강호는 관객인 우리들을 들여다보고, 또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는 문자 그대로 현대 한국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페이스 중 하나인 셈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클로즈업을 “한 시대를 요약하는 표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송강호를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하며, 송강호의 연기가 지닌 “보편의 존재를 흡수하고 밖으로 튕겨내는 단단한 탄력”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우리가 잊고 살아갔던 어떤 ‘얼굴’을 관객들에게 찾아주었다.

이 과정에서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의 감독들은 송강호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했던 든든한 존재들이었다. “훌륭한 감독들에게 많이 선택받은 건 영광스럽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가 이른바 ‘유명 감독’들만 파트너로 삼는 것은 아니다. <YMCA 야구단>의 김현석 감독, <효자동 이발사>(04)의 임찬상 감독, <남극일기>(05)의 임필성 감독은 데뷔작에서 송강호와 작업했고, <우아한 세계>(07)의 한재림 감독과 차기작인 <의형제>(가제)의 장훈 감독은 두 번째 영화를 함께 한다. 이러한 균형 속에서 그가 경계했던 것은 반복되고 소모되는 이미지였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한 장면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것이 미리 규정된 장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연기뿐 아니라 세상살이 역시 쉽게 규정 지을 수 없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저는 한 번 했던 연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쪽인 것 같아요. <넘버 3> 이후에 조폭 배역이 쏟아져 들어왔고, <살인의 추억> 이후엔 형사 배역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런 이유로 거절했어요.”



한 번 밟았던 땅은 다시 밟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 덕분에, 관객들은 언제나 새로운 송강호를 만날 수 있었고, <괴물>(06) <우아한 세계> <밀양>(07)은 국내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연이어 선사했다. 그는 이즈음 시상식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갚아야 하는 빚을 지는 느낌이다” 등의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는 10년의 시간을 통해 어느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고,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엔 조금씩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현재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박쥐>는 그가 찍었고 앞으로 찍을 수많은 영화 중 한 편일 뿐이지만, 관객들에겐 조금은 충격이고 또 다른 송강호를 발견할 수 있는 “즐거운 배반”의 영화다.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 >를 찍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박쥐>의 이야기는 10년 만에 드디어 관객과 만났고,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사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기를, 송강호라는 배우가 관통한 셈이죠. 하지만 최근 1~2년 동안 제가 피부로 느낄 만큼 한국영화가 위축된 상태인 건 사실이에요. 그 많은 영화 인력들이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같은 시기가 언젠간 올 것 같았어요. 통과의례 같은 셈인데…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이 시기를 겪고 나면 더 내실을 다질 수 있고 조만간 건강한 산업 구조가 생길 거라고 확신해요. 힘들더라도 견뎌야 할 과정인 거죠.” 그러면서 <박쥐>라는 영화가 현재의 한국영화에 작지만 소중한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박쥐>가 산업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지난 르네상스 시기가 거품만 있었던 게 아니라 질적인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는 걸 관객에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역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한국영화에 대한 신뢰감을 되찾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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