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감독 봉준호 - 상식을 허물다

 




2000년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후 10년, 정확히 3년에 한 편씩을 내놓은 봉준호 감독은 네 번째 영화에서 전작들과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단편영화 때부터 그의 영화는 ‘세상’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살인의 추억>(03)은 “시대의 암흑이 살인사건의 암흑을 뒤덮고도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괴물>은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와 시스템” 혹은 “그 시스템의 무능함”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마더>는 다르다. 이 영화의 칼 끝은 밖이 아닌 ‘안’을 겨눈다. “<마더>는 안으로부터 붕괴되는 이야기에요. 그런 점에서 전작들과 완전히 반대죠.” 현재인 것 같으면서도 과거 같고, 시골 같은 것과 도시적인 것이 혼재한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마더>의 세계는, 부조화스러우면서도 왠지 불온하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지속되는 한, 10년, 20년 후에 봐도 똑같을 영화 <마더>. “우리가 찬양하는 모성이, 한 발자국만 살짝 넘어가도 굉장히 추악한 광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미와 새끼의 관계로 치환하면, 어미는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야수성을 지니는 거죠. 그건 추상적인 잣대나 도덕적인 레퍼런스와 무관해요. 모성, 광기, 야수성…. 선악의 잣대를 벗어나, <마더>를 보는 관객들이 따져봤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 한가운데, 영화의 핵인 ‘마더’ 김혜자가 있다. 감독이 개봉 전에 여러 차례 밝혔듯, <마더>는 김혜자라는 배우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영화였다. “김혜자 선생님에겐, 본인도 본인을 컨트롤하지 않는 면이 있어요. ‘내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라고 하실 때 마치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은 눈빛이 나오시는데, 현장에서 정말 쇼킹했거든요. 그런데 본인도 모니터로 확인하시면서 놀라시더라고요. 감정에 강렬하게 몰입하고, 계산 없이 그걸 그냥 몸으로 표현하시는 거죠.” 그러면서 김혜자는 현장에서, 마치 신인 배우처럼 항상 불안해 했다.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도, 정말 오케이냐고 반문했다. “선생님은 극한까지 마음을 먹으셨던 것 같아요.” 배우의 그 느낌은 영화와 행복하게 어우러졌고, <마더>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영화의 결’을 지니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던 봉준호 감독에게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 있었다면 바로 아버지의 서재였다. 디자인 전공자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엔 수많은 관련 외국 서적들이 있었고, 봉준호 감독은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들어가 책들을 보면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자연스레 만화는 그의 유년기를 사로잡게 된다. 그는 항상 만화를 그렸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교 시절에도 ‘만화 그리기’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으며, 영화감독이 되어서도 그는 직접 콘티를 그렸다.

만화와 함께 TV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AFKN에서 방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들은 그에게 또래보다는 좀 더 성숙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고, 그는 그곳에서 샘 페킨파 히치콕을 만났다. 그러면서 영화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었던 ‘볼 수 없는 영화들’을 열망하게 되었으며, 공테이프에 TV에서 방영하는 클래식 영화를 녹화했고, 중고 비디오 시장을 돌며 희귀작을 접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는 연극영화과 대신 사회학과를 선택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낸 영문 서적 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략) 1980년대부터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화감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봤다. 나는 영화를 전공하는 것보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영화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1988년의 대한민국은 ‘6월 항쟁’의 여파와 올림픽 개최로 ‘뜨거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 동아리와 학생 운동을 오가던 그때, 지적인 분위기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던 봉준호 감독은 과거엔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난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농활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괴물>(06)에서 박강두(송강호) 가족의 삶은 그런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에 나의 성장 배경은 <살인의 추억>(03)의 박현규(박해일)의 캐릭터에 가까운,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봉준호 감독은 친구들과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백색인>(93)이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한다. 화이트 칼라 주인공이 달동네를 헤매게 되고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거의 대사 없이 이미지와 배우의 액션으로 진행되는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계급 문제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몇몇 영화제에서 주목 받긴 했지만, 당시 단편영화의 정치적 스타일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11기)에 입학한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영화에 다가간다. 두 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그 중 <지리멸렬>(94)은 몇몇 영화인들이 ‘봉준호’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계기였다. 언론인과 대학교수와 법조인이라는, 한국 사회의 지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허위를 들추는 이 영화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단편영화 중 하나다.

그가 처음으로 만난 ‘충무로 영화인’은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우연히 <지리멸렬> 시나리오를 접하고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했다. 그때 박찬욱 감독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사 ‘씨네월드’에서 작업중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납치한다는 내용의 시놉시스가 있었고 저는 장편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됐어요. <부자유친>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결국은 완성되지 못했죠. 제가 쓴 버전이 반영되진 않았지만, <부자유친>은 이후 이무영 감독님의 <휴머니스트>(01)로 세상에 나왔어요.” 이후 이준익 감독은 또 하나의 아이템으로 시나리오를 맡겼지만, 봉준호 감독은 결국 완성하지 못한다. “그땐 장편에 대한 정확한 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현장 경험을 하고 싶었던 봉준호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과 장선우 감독의 <꽃잎>(96)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고, 영화아카데미 선배였던 박종원 감독을 찾아갔다. “그때 <김대중 죽이기>라는 센세이셔널한 정치 영화를 준비중이셨죠. 시놉시스 작업을 했는데, 그 프로젝트도 엎어졌어요. 여기저기 찔러 봤지만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건 없었고, 원했던 연출부도 떨어지고….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는 생각으로 박종원 감독님과 뭘 하나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때 박종원 감독은 충무로 중견 감독 7명과 함께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96)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하고 있었고,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15분짜리 에피소드에 연출부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면서 첫 충무로 경험을 한다. 박종원 감독은 박기용감독에게 봉준호 감독을 소개시켜 주었고, 그는 <모텔 선인장>(97)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박기용 감독님과 꽤 오랜 시간 썼어요. 영화가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알 수 몰랐던, 답답한 세월이었죠.” <모텔 선인장>은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경험한 장편영화 현장이었고, 이후 <유령>(99)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자신의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준비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때(단편영화를 만들 때)나 지금(장편영화로 데뷔한 후)이나 나의 단순 심플한 원칙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무도 찍어주지 않으니까 내가 찍어서 내가 봐야지’, 그런 기본적인 충동이 있다.” 단편과 장편, 여러 장르적 요소들 속에서도 변함없이 드러나는, 감독이 ‘스스로 보고 싶은’ 영화적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일 것이다. “저는 이질적인 스타일이나 느낌들이 충돌하는 걸 좋아해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점점 기괴하고 만화적인 게 뒤섞이면서 그 둘이 충돌하는 긴장감 같은 것이죠.” <플란다스의 개>의 일상적인 아파트 단지엔 음습한 느낌의 지하실이 있다. <살인의 추억> 첫 장면, 황금빛 들판의 한 구석 배수구 속엔 처참한 시체가 있다. <괴물>의 평화로운 한강 둔치는 재난의 장소로 변하고, 그 한 켠 지하엔 가련한 희생자들이 있다. 그의 공간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기저엔 표면과 상반된 것들이 존재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지승호와의 인터뷰(<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의하면 “단편 찍던 시절의 인디펜던트한 마인드나 감수성 이런 것을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계속 그 연장선상에 있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영화다. 동시에 이 영화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거나 혹은 변주되는 테마와 특성이 잘 살아 있다.

<플란다스의 개>엔 어울리기 힘든 요소가 공존하며, 장르영화에 대한 모호하면서도 이중적 태도가 있고, 감독 특유의 터치가 느껴지는 ‘루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웃다가 정신차려보니 갑자기 낯선 곳에 와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드는 색다른 코미디”라고 평하기도 했던 <플란다스의 개>는, 지극히 일상적인 배경에서 출발하지만 느닷없는 판타지 요소가 개입하고, 코미디라고 하기엔 씁쓸하며, 인물들은 ‘가진 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 중에서 특히 봉준호 영화의 장르성은 독특하다. 그는 단순한 장르 비틀기가 아니라, 장르를 조롱하며 그 인위적인 경계성을 지운다. “비디오 가게에 가도 액션, 코미디 이렇게 나뉘어 있잖아요. 저는 이 테이프를 어디에 꽂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펴낸 <살인의 추억>이라는 책의 인터뷰에선, 당시 <괴물>을 준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략) 엄청 미국적인 장르에 똥물을 튀겨보자, 장르를 객지에 데려와서 욕 좀 보이자, 뭐 이런 생각이죠.(웃음)” ‘구분 짓기’를 거부하는 그의 영화들은 일반적인 범주화와 거리를 둔다. 감독의 인장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작가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영화를 ‘예술영화’라고 보긴 힘들다. 상업영화인 것은 분명하나. 그 안의 메시지 또한 녹록치 않다. 그리고 한국적인 그 무엇과 장르적인 그 무엇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의 영화는 관습을 벗어난 코미디 영화(플란다스의 개), 범인이 잡히지 않는 스릴러(살인의 추억), 괴수가 등장하는 가족영화(괴물), 범죄극에서 시작한 모성 드라마(마더)인 셈이다.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대중과 평단의 신뢰를 얻는다. 1980년대 남한을 뒤흔들었던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전작과는 달리 “개인보다는 사건을 더 존중한” 영화였고, 감독은 그 시대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3년 후의 <괴물>은 2009년 현재까지도 유효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세운다. 그러면서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의 작품 세계는 비평적으로 확산 과정을 겪는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가 지닌 ‘시대적 화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남한 사회가 ‘봉준호’라는 프리즘을 통해 영화적으로 재현되는 방식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봉준호의 특이성은 최근 한국영화의 변화를 거스르지는 않으면서도 여전히 역사적 현실에 대한 고민을 견지하고 있는 데 있다”는 영화평론가 문재철의 말처럼(<한국의 영화감독 7인을 말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정치적인 알레고리 혹은 과거에 대한 반성적 회의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외국의 평자들에게도 공유되는데, 영국의 평론가 데이비드 제이스는 <살인의 추억>에 대해 “영화 속의 살인들은 한국의 총체적인 환각과 편집증에 접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가 되게 엽기적이잖아요. 도대체 한국 사회는 왜 이해할 수가 없지, 하는 강박이 어릴 때부터 많았던 것 같아요.”

이것은 구체적인 ‘사람’의 문제로 확장되는데, 영화평론가 강성률은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이라는 책에서 “결국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의 문제”라고 다소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인물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며, 그들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소녀’와 ‘부랑자’ 캐릭터는 좀 더 울림을 준다. “어렸을 때 <엘리펀트 맨> 같은 영화를 보고 ‘프릭스’(freaks, 변종)의 존재에 매혹된 적이 있어요. 정상이 아닌 사람들을 찍은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에 감명 받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이 시나리오 쓸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제 영화엔 약자가 많이 나와요. 그러다 보면 더 약한 사람들을 등장시켜야 했고, 그래서 그런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등장한 소녀와 부랑자들은 영화에서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의외의 해결사나 묘한 감동을 선사하는 인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 <마더>는 한 발 더 나아간 영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공간, 인물, 사건 등 영화 전체가 ‘프릭스’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 합리와 비합리를 따지는 것은 조금은 맥빠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시대적 배경이나 지역성이 흐트러지기를 바랐어요. 외양은 1980년대처럼 보이는데 핸드폰이 등장한다거나, 도시와 시골이 섞여 있는 듯한 이미지죠. 그리고 그 안을 엄마가 휘젓고 다녀요. 어떻게 보면 <마더>는 엄마의 로드무비예요.”

그리고 <마더>의 그 모호한 세계는 “전반적인 광기와 음습한 섹스”로 연결되어 있으며, 엄마와 아들의 관계 사이에도 묘한 성적 긴장이 흐른다(칸영화제에서 적지 않은 외국의 평자들은 <마더>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읽었다).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섹스로 얼룩져 있고, 누군가는 섹스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섹스를 해야 한다. “<마더>는 명백하게 섹스에 대한 스토리이며, 후반부엔 음습한 섹스의 세계 한복판으로 돌진하죠. 사실 사람들은, ‘엄마’와 ‘섹스’를 조합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잖아요. 마치 섹스의 반대말이 엄마인 것처럼. 하지만 영화 찍을 때, 저도 도준(원빈)과 엄마의 관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하며 찍었어요.”


“상식이나 이성이라는 게 사실 초라해질 때가 많아요, 그런 게 연약한 거예요. 저는 그런 것의 경계가 허물어진, 그런 세계가 좋아요.” 봉준호 감독은 <마더>에서 전작과는 확실히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그리고 조만간 각색 작업에 들어갈 <설국열차>도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듯하다. “<마더>가 조금 달랐다면, <설국열차>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겠죠. 한국적인 것이 없거나, 있어도 다르게 접근될 것 같고요. 기차 안에 여러 나라의 생존자들이 있고 그들이 뒤섞이는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012년에 찾아올 영화 <설국열차>. ‘3년’이라는 텀으로 영화를 만드는 봉준호 감독의 행보는, 당분간 계속 관객들을 뒤흔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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