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두 시절을 관통하는 인간의 강박관념은 영화의 규모가 크던 작던 동일하게 드리워진 데이비드 린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인 핍이 느끼는 성공에 대한 갈망과 집착은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인간의 자존심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파멸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 된다. <콰이강의 다리>의 알렉스 기네스의 모습이야말로 대표적이다. 니콜슨 대령의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시종일관 제 시간에 다리를 완성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일본군에게 수용되어 있는 영국군과 함께 있다. 일본군이 완성해야 하는 다리를 함께 짓자는 지휘관 사이토의 말에 니콜슨 대령은 제네바협정을 들먹이며 거부를 한다. 이로 인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함석으로 된 오두막에 니콜슨이 갇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곳은 마치 ‘오븐’처럼 열기로 가득하다(이 장면의 느낌은 앞에서 언급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사막 장면과 흡사하다). 이후 두 사람은 일종의 자존심 대결을 펼치며 다리 만들기를 실행한다.
그것은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말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전쟁 속에서도 굽힐 수 없는 인간의 자존심에 대해 인상적인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인간이란 참으로 기묘한 존재이다. 적군을 도운 죄로 기소 당하지 않겠냐고 동료가 묻자 니콜슨 대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이 다리를 오랫동안 사용할 사람들이 와서 이 다리를 어떻게 지었는지, 그리고 누가 지었는지를 가슴에 새기게 되기를 나는 바라네.” 니콜슨은 로렌스만큼이나 낭만적인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 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열차가 통과하기 전날 밤, 그는 다리 밑에 “영국군 장병들이 설계하고 지었다.”는 명판을 망치질 한다.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니콜슨이나 로렌스는 쉽게 용인 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이함을 보여주는 데이비드 린의 세계가 아닐까. 그가 영국 시절에 이어 미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규모의 웅장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인간의 넓이와 깊이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의 세계는 이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시를 완성해 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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