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감독 이창동 - 의미와 이야기

 

 


연극, 소설, 그리고 조용히 다가온 영화
한국영화계에서 이창동 감독의 존재는 조금은 이례적이다. 1980년대에 주목 받던 소설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990년대에 충무로로 건너왔고,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었으며, 참여정부 시절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관료’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밀양>에 이어 현재는 다섯 번째 영화인 <시>를 촬영 중이다. 하지만 정작 ‘이례적’인 부분은, 몇 줄로 요약된 경력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에 시작된 이른바 ‘한국영화 뉴웨이브’가 서서히 잦아들며, 충무로가 서서히 산업화를 가속시키며 고속 성장을 이루던 시기, 그는 트렌드나 컨셉트와 거리를 둔 영화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통했던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들은 우리가 뭔가 잃어 버렸던 것을 환기시키고, 그의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영화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울림’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고통스러운 울림이다.

이창동 감독은 1954년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과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의 유년기는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좌파적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가난하지만 뼈대 있는 가문. “어렸을 때 나에겐 근거 없는 엘리트주의가 있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은 미적이며 도덕적인 자부심으로 변해갔다.” 그러한 자부심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썼다. 글은 스스로와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씨네21> 편집장을 지냈으며 소설가이기도 한 조선희와의 인터뷰에서, 무엇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글은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 때 우연찮게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에 서너 컷 정도 출연한 적은 있지만(실제 모델인 이윤복이 이창동 감독과 같은 반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준 건 영화보다는 연극이었다. 그의 형은 대구의 극단 일을 하고 있었고, 이창동 감독은 10대 시절에 자연스레 연극을 접하게 되었으며, 20대 땐 극단에서 포스터도 붙이고 전단지도 돌리고 연출도 하고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되었고, 이 시절 소설 <전리>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그리고 이 시절 대학로 연극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명계남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이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 물고기>(1997)의 프로듀서가 된다. 이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그에게 글 쓰기는 쉽지 않았다. “문학 청년 시절 외엔 글 쓰는 게 즐겁지 않았고, 글 자체에 대한 취향보다는 이야기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문”하던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에겐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가 1~2년 있을 계획도 세웠다. 이때 그에게 영화가 왔다.


마흔 즈음에 첫 현장으로 나가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친구인 소설가 최인석을 통해서였다. 당시 최인석 작가는 <칠수와 만수>(1988) 각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시사회 뒤풀이에 참여한 이창동 감독은 박광수 감독을 만난다.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 하는 사람들은 다 소통하기 힘든,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박 감독을 만나면서 그런 선입견은 모두 깨져 버렸다”고 당시를 떠올리는 이창동 감독은, 몇 년 후 박광수 감독의 전화를 받는다. 당시 박광수 감독은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를 준비 중이었는데, 원작 소설의 발문을 썼던 이창동 감독에게 소설가 임철우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한 것. 이후 박광수 감독은 이창동 감독에게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했다. 글에 대한 열정이 소진되던 무렵 영화는 그렇게 다가왔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는데 산다는 것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회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1990년대 들어서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당시는 뭔가 달라졌다고 규정된 분위기였다. 이건 좀 아니라는 존재론적 회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없던 시절이었다.”


버릇처럼 파리로 영화 공부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곤 했던 이창동 감독을, 박광수 감독은 “현장 경험 없이 유학 가면 실패한다”며 눌러 앉혔다. 그렇게 그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연출부가 되었고, 함께 하던 연출부 한 명이 그만두게 되면서 졸지에 현장을 통솔해야 하는 조감독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영화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에겐 큰 도전이었다. “박광수 감독에게 영화의 ABC를 배웠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 게 39세 때였는데, 그렇게 늙은 사람을 조감독으로 써주고, 영화 연출의 기본기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박광수 감독”이었다는 이창동 감독은, “다시 살아보는 기분으로” 현장에 섰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현장의 땡볕 밑에서 피부가 그을려질수록, 당시 가졌던 삶에 대한 회의는 서서히 사라졌다. “조감독을 하면서도 나중에 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다. 현실적 고민에서 탈출하기 위한 현장이었으니까.”

그렇게 첫 작품을 마친 이창동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차기작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그는 첫 영화를 준비한다. 명계남(그는 <그 섬에 가고 싶다>로, 이창동 감독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늦깎이’로 진출했다), 문성근, 여균동 등과 함께 설립한 ‘이스트 필름’은 그 모태가 되었고 창립 작품은 <초록 물고기>였다. 김영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운명’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지만, 형 덕분에 연극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연극은 나에게 매우 친밀했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포기해야 했지만,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매우 좋아하기도 했다. 이후 내 삶은 계속 떠돌았지만, 결국은 그 과정도 모두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첫 영화 <초록 물고기>, 정체성이라는 테마

첫 작품을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충무로는 대기업과 금융권 자본이 제작 자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러 곳에 시나리오를 건넸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소설가로서의 지명도는 있었지만, 단편영화 한 편 찍은 적 없는 신인을 믿고 덥석 제작비를 투자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자체도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때 강우석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다. 제작비 규모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이창동 감독은 의외로 빠른 데뷔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당시 충무로 최고의 흥행 배우였던한석규 출연을 결정했고, <그 섬에 가고 싶다> 때 인연을 맺은 심혜진 가세했다. 당시 충무로를 대표하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다.

이창동 감독은 데뷔작에서 충무로의 관습적인 영화 문법과 거리를 두고, ‘이야기’와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데뷔작이라면 어떤 ‘유혹’이 있을 법도 했지만, <초록 물고기>는 좋은 비주얼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결합된 이른바 ‘웰메이드 상업영화’ 스타일에서 한발자국 비껴서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오롯이 느껴지는 영화였으며, 특히 캐릭터에 대한 역점은 두드러졌다. 이 시기 영화월간지 <스크린>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영화에서 너무 인물이 안 보인다. 인물의 매력, 삶, 감정 등이 관객에게 전달될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인물을 강조하고 싶었다. 왜곡된 인물이 아닌 진짜 삶에서 부딪히는 그런 인물을.”

사실 장르의 외피만 살피면, <초록 물고기>는 갱스터 느와르에 멜로드라마가 결합된 형태다. 갓 제대한 막둥이(한석규)라는 순수한 청년은, 배태곤(문성근)의 조직 속에서, 보스의 여자인 미애(심혜진)를 사랑한다. 하지만 막둥이는 어둠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죽기 전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초록 물고기’를 떠올린다. 이창동 감독은 데뷔작에서 관객에게, 통속적인 이야기의 익숙한 쾌감과 함께 그것을 배반하며 뒤집는 전개를 함께 선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주인공이 죽었음에도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 대신 살아남은 자들, 즉 주인공을 죽인 자와 (그를 모르는) 주인공의 가족들이 만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나오자 많은 평론가들은 ‘가족’이라는 테마를 떠올렸지만, 감독은 첫 영화에서 (이후 그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대두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영화계간지 <영화언어>에 실린 영화평론가 김성욱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초록 물고기>에서 일종의 오해라고 할까, 그걸 많이 느꼈다. 내가 <초록 물고기>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가족의 복원이 아니다. (중략) 내가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막둥이의 정체성 없음이다. (중략) <초록 물고기>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그 또래 청년들의 정체성 상실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찾으려 하는 한국인 일반의 정체성 상실이다.”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초록 물고기>를 통해 ‘소설가 출신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에서 방점은,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인터뷰에서 수많은 인터뷰어들은 그에게 ‘소설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 물었고, 그는 수없이 대답을 반복해야 했다(최근의 인터뷰에서도 그가 ‘소설가 출신’임을 환기시키는 질문은 종종 나온다). 기본적으로 그는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가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 쓰는 것과 영화 만드는 걸 별로 다르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단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소설 쓸 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과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며 그만큼 차이가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용물보다 더 다르게 영화의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업 방식. 여러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만들어가는 ‘영화’엔, 서재에서 홀로 자판을 두들겼던 소설 작업이 주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 <밀양>(2007) 때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진심인데, 나는 영화에서 감독이 모든 걸 만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딱 감독의 역량만큼만이라면, 잘 해봐야 정말 거기까지인 거다. 영화는 스태프든 배우든,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든, 여러 요소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다. 거기서 뭔가 나오는 거다. 그것이 뭔가를 창조해내는 과정인데, 감독은 거기서 그야말로 그들에게 방향을 주거나 아니면 조금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정도다. 그래서 참여하는 사람들의 창조성을 최대한 뽑아내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실제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게임’이라고도 표현했다. “소설은 쓰고자 마음 먹으면 개인적인 고민만으로도 나올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일종의 게임이다. 제작자와 영화적 제반 시스템과의 게임. 그리고 막판엔 관객과의 게임.”


<박하사탕>, 시간의 아이러니
막연히 ‘시간이 거꾸로 가는 영화’ 정도를 떠올리긴 했지만, 사실 그는 <초록 물고기> 전에 <박하사탕>을 첫 영화로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로 데뷔하기 힘들다는 주변의 만류로 잠시 미루었던 프로젝트는, 그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2000)이 되었다.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21세기 한국 극장가의 스타트를 끊었던 <박하사탕>은, 진지한 영화 관객들에게 잔잔한 신드롬을 일으켰다. <초록 물고기>가 ‘일산’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서서히 잦아드는 인물을 보여준다면, <박하사탕>의 중심은 시간이다. “7개의 단편영화를 나눠서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는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20년의 시간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원인과 결과의 시간의 뒤바뀐 구조 속에서 시간의 아이러니가 만들어지고, 주인공 영호(설경구)는 다시 같은 공간으로 돌아온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철교 밑에서, 스무 살 젊어진 영호는 순임(문소리)에게 “언젠가 와 본 곳 같다”고 말한다. 그때 순임은 “꿈이었을 것”이라며 “그 꿈이 좋은 꿈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은 이 한 마디를 위해 135분의 러닝타임을 달린다. “(순임의 그 말이) <박하사탕>을 통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 말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좋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흘러가는 시간이란 것이 꿈의 다른 이름이라면, 우리는 언제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이처럼 <박하사탕>은 어떤 ‘꿈’이 있었던, 이젠 잃어버린 그 시절에 대한 ‘불가능한 회귀’를 영화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하지만, 그러한 ‘현실적 판타지’를 꿈꾸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박하사탕>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었고, 평단의 호의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꽤 괜찮은 흥행을 거두었으며, 그 토대엔 이창동 감독의 은근한 신념이 있었다. “영화는 아주 모순적인 매체다. 진실을 담아내는 측면과, 진실을 왜곡시켜 볼거리나 환상을 제공하는 측면이 공존한다. 하지만 난 이 두 가지 측면 중에서 전자의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되도록 ‘진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진실’을 담아내진 못하겠지만, 그와 비슷한 것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건 순전히 내 짝사랑인데, 사람들이 항상 ‘달콤한 과자’만 먹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다. 정성을 다하면… 흥행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이어지는 <오아시스>(2002)는 그의 영화 중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많은 논의가 오갔던 작품이다. 홍종두(설경구)와 한공주(문소리)의 특별하면서도 조금은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인 <오아시스>에서, 판타지와 현실은 매듭 부분을 찾기 힘들게 이어져 있다. 그냥 관객들에게 ‘툭’ 제시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묘한 착시 현상처럼 다가오기도 하며, 인물의 내면적 비밀을 엿보게도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판타지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다. ‘연출의 변’에서도 밝혔듯,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나누어 갖고 경험하는 판타지”로서의 사랑을 보여주며, 그 사랑은 “지극한 주관성으로 인해 늘 그것을 둘러싼 객관성과 충돌하고 싸우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를 통해 전하는 테마는 ‘경계’다. 사랑은 물론, 영화를 만들고 본다는 것도 주관성과 객관성의 충돌인 셈이며,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충돌의 경계 위에 있기를 바랐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판타지가 한 프레임 안에서 공존하며 이어질 때,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감독은 관객을 현실을 각성하도록 밀어내지도 않고 판타지 속으로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은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감독은 그것이 진정한 소통일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경계 위의 자리를 권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 <시>
참여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그는 퇴임 후 네 번째 영화 <밀양>으로 돌아왔다. 1988년에 읽은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가 모태가 된 이 영화는 <오아시스>보다 더 심화된 ‘고통’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는 고통의 근원보다 ‘인간이 고통을 맞이했을 때’에 더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의 고통을 바라볼 수 없다. 그녀의 고통은 이상하게 관객의 내면으로 자꾸 밀고 들어오며, 여기엔 ‘용서’ ‘죄의식’ 같은 종교적 화두들도 동반된다. 영화평론가 허문영과의 <씨네21>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통이란 자기가 경험하는 것까지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게 인간관계의 모순이다. 그리고 어떤 고통의 경우에는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다. (중략) 그때는 가해자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를 (중략) 인간의 논리로 미워해봐야 고통만 깊어질 뿐이라고. 거기서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고통을 치유 받든지, 어쨌건 인간의 논리를 넘어서야만 한다.”

특히 이전의 영화에 비해 ‘날 것’의 느낌이 좀 더 나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현실성’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지향성을 좀 더 확실히 느끼게 한다. “간단히 말하면 대상의 탈신비화라고 할까? 영화가 좀 더 정직해지려면 말이다. 영화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인물이든 풍경이든 사물이든 신비화시킨다. 그걸 자꾸 벗겨내고 싶은 거다. 왜냐하면 영화들이 갈수록 점점 더 그러니까. 점점 더 대상을 신비화하거나 포장하고 판타지적 요소를 더 늘려가니까. 그러다 보니 거기 담겨 있는 이야기와 인간의 모습조차 대상화된다. 나는 조금 거꾸로 가고 싶다.”

현재 그는 다섯 번째 영화 <시>의 현장에 있다. <만무방>(1994) 이후 15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윤정희를 주인공으로, 이창동 감독은 생전 처음 ‘시’라는 것을 쓰게 된 60대 중반의 여인 이야기를 한다. 김혜리와의 <씨네21> 인터뷰에서 그는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모든 예술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하고도 같다. 영화가 뭘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과도 같다. 영화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나오지만 나에게는 영화를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초록 물고기>처럼 장르적 통속성을 이용하지도 않고, <박하사탕>처럼 시간의 아이러니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으며, <오아시스>처럼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 위에 있지도 않은, 좀 더 일상적인 느낌이 감지되는 영화 <시>. 그가 이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이 관객들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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