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소설, 그리고 조용히 다가온 영화 한국영화계에서 이창동 감독의 존재는 조금은 이례적이다. 1980년대에 주목 받던 소설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990년대에 충무로로 건너왔고,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었으며, 참여정부 시절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관료’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밀양>에 이어 현재는 다섯 번째 영화인 <시>를 촬영 중이다. 하지만 정작 ‘이례적’인 부분은, 몇 줄로 요약된 경력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에 시작된 이른바 ‘한국영화 뉴웨이브’가 서서히 잦아들며, 충무로가 서서히 산업화를 가속시키며 고속 성장을 이루던 시기, 그는 트렌드나 컨셉트와 거리를 둔 영화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통했던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들은 우리가 뭔가 잃어 버렸던 것을 환기시키고, 그의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영화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울림’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고통스러운 울림이다.
이창동 감독은 1954년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과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의 유년기는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좌파적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가난하지만 뼈대 있는 가문. “어렸을 때 나에겐 근거 없는 엘리트주의가 있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은 미적이며 도덕적인 자부심으로 변해갔다.” 그러한 자부심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썼다. 글은 스스로와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씨네21> 편집장을 지냈으며 소설가이기도 한 조선희와의 인터뷰에서, 무엇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글은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 때 우연찮게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에 서너 컷 정도 출연한 적은 있지만(실제 모델인 이윤복이 이창동 감독과 같은 반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준 건 영화보다는 연극이었다. 그의 형은 대구의 극단 일을 하고 있었고, 이창동 감독은 10대 시절에 자연스레 연극을 접하게 되었으며, 20대 땐 극단에서 포스터도 붙이고 전단지도 돌리고 연출도 하고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되었고, 이 시절 소설 <전리>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그리고 이 시절 대학로 연극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명계남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이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 물고기>(1997)의 프로듀서가 된다. 이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그에게 글 쓰기는 쉽지 않았다. “문학 청년 시절 외엔 글 쓰는 게 즐겁지 않았고, 글 자체에 대한 취향보다는 이야기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문”하던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에겐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가 1~2년 있을 계획도 세웠다. 이때 그에게 영화가 왔다.
마흔 즈음에 첫 현장으로 나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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