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그의 파트너는 선우완 감독이었다. 영화계를 거쳐 당시 TV 드라마 PD였던 그는 <베스트셀러 극장>(MBC)에서 20여 편의 단막극을 만들었고, 이때 장선우 감독은 각본을 썼다(이후 <연>(88)이라는 단막극을 직접 연출하기도 한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서울 예수>(86. 이후 검열에 의해 <서울 황제>로 개명)라는 영화를 공동 연출했고,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데뷔작이 된다.
“이 영화는 우화이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제대로 개봉하지 못한 채 잊혀간 영화로서, 자칭 예수라는 사나이(김명곤)와 껌팔이 소년(안용남), 그리고 몸을 파는 김마리(오수미)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 시기 그는 <베스트셀러 극장>의 대본을 쓰면서 두 번째 작품을 준비했다. 과거 마당극 시절, 어떤 사건이 생기면 즉시 대본으로 옮기는 훈련을 해왔던 장선우 감독에겐, 그렇게 생성된 언어적 능력이 TV 드라마 대본과 시나리오를 쓰는 밑거름이 되었다. 실질적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시대>(88)에선 <서울 예수>의 우화적 화법이 ‘자본주의’를 대상으로 펼쳐진다. 김판촉(안성기)이나 성소비(이혜영) 같은 이름과, 회사명인 ‘막강 그룹’이나 술집 이름인 ‘성공시대’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사회적 관심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상을 충분히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괜찮은 평가를 얻으며 그에게 좀 더 편안한 제작 환경을 제공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씻김>(95)을 포함해 총 11편에 달하는 그의 필모그래피 이면엔, 영화화되지 못한 그만큼의 필모그래피가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시대> 전후로 그는 윤정모의 소설 <님>이나, 고문을 다룬 임철우의 소설 <붉은 방>을 영화화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나 광주 민주화 항쟁을 그린 연극 <금희의 오월>, 김향숙의 <겨울의 빛>, 김지하의 <밥>, 강승원의 <남한강> 등 그가 구상했던 프로젝트는 수없이 많다. 2000년엔 <바리 공주>를 위해 사막을 떠돌았고, 2005년엔 <천개의 고원>을 위해 몽골 지역까지 갔지만 두 프로젝트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만약 이 프로젝트들 중 절반이라도 실제로 영화화되었다면, 장선우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풍부하고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성공시대> 이후 그가 선택한 이야기는 박영한의 소설을 영화화한 <우묵배미의 사랑>(90)이었다. 영화평론가 이정하는 “그(장선우)의 영화는 대체로 어딘지 불완전하고 고전적 조화미에서 벗어나 있는 편인데 이 영화는 예외적으로 고전적 조화미를 갖추고 있으며 결점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우묵배미의 사랑>을 평가하는데, 이 영화가 보여준 민중의 삶에 대한 리얼리즘적 시선은 지금까지도 많은 관객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으며, 장선우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리얼리즘을 논하면 그 영화가 재미없다고 오인하는데, 이것을 충실하게 표현하면 얼마나 값지고 실감나는 감동을 주는지 알리려는 시도”로 <우묵배미의 사랑>을 자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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