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감독 장선우 - 한국영화의 전위

 

 



그의 아버지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영화제작에 관여한 사람이었지만, 장선우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 살았던 ‘영화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른바 ‘서클’ 활동을 하며 세상과 부딪혔고, 여행 중에 싸운 것이 문제가 되어 고등학교를 자퇴(사실상 퇴학)한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당시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한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의식화’된다. 탈춤반에서 만난 선배인 채희완(현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을 비롯 임진택(판소리꾼), 김석만(현 서울시극단 단장), 김영동(작곡가) 등은 당시의 지인들. 그는 독일의 변증법적 철학과 마당극 문화에 심취했다. 박정희 유신 정권하였던 1970년대의 대학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고, 1975년 서울대에선 김상진 열사의 할복 사건이 있었다. 다음 해, 학우들과 함께 1주기 추모 집회를 주도한 장선우 감독은 체포되었고, 집행유예 선고와 함께 곧장 군대로 끌려간다. 제대 후 그는 복학을 미루고 여러 가지 일을 접한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만들던 <독서 신문> <소설 문학> 등의 문학지 편집부에 있었고, 보일러 기사 자격증을 딴 후 화학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미역 가공 공장에도 있었다.

1980년, 4년 만에 복학한 캠퍼스는 여전히 암울했다. 그는 다시 마당극을 시작했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구속되어 6개월의 수감 생활을 한다. 감옥에 있었던 6개월은, 정신 없이 살아온 그에게 처음으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문화 운동의 본질과 방향에 고민하던 그에게 사실 영화는 처음엔 막연하게 다가왔다. “갖가지 빛깔의 무수한 형체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떠오른 것이 영화였다.” 그가 영화를 생각한 것은, 한편으로는 한정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마당극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는 훨씬 더 대중적인 매체였으니까. 그러면서 언젠가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영화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그 생각은 16년 후 <꽃잎>(96)이 된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는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1980년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해였고,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80)은 장선우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이장호 감독의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81)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부 일도 하면서 영화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바보 선언>(84)에 ‘객원 연출부’로 참여했다(다큐멘터리 감독김동원도 당시 객원 연출부였다). 그는 현장 경험과 평론 작업을 병행했다. “평론을 쓰게 된 것은 의무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공부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는 그는 <마당>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월간지에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으며, 거칠지만 나름의 영화론을 정립한다. ‘열린 영화’ ‘신명의 카메라’ ‘카메라의 인간 선언’ 같은 개념은 기존의 상투적인 충무로 영화를 극복할, 새롭고 대안적인 영화에 대한 장선우 감독의 시각이었다.

여기엔 과거 그가 심취했던 마당극의 열린 형식과 그 미학이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 무대가 폐쇄된 공간이라면 마당은 참여에 의한 열린 공간이라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선 허구적인 것은 파괴되며 특권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영화의 카메라에 이러한 특성을 부여하려 했다.

영화<귀여워>에서 배우로 출연한 장선우.

그는 무크지 <공동체 문화>(83)에 기고한 논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열려진 영화는 바로 카메라의 눈이 환상적인 것을 포기하며 특권적인 것을 거부하고, 대상과의 관련성에 있어서 직선적인 데서 원형적인 것으로,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유폐가 아니라 해방을 원함으로써 비롯된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서 ‘신명의 카메라’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카메라 자체는 독립된 인격이 되어 상대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걸며 발언하고 다투기도 할 뿐만 아니라, 대상이 비어 있을 땐 그 자리를 메우고 대상이 울고 있을 때 그는 광대처럼 춤추기도 하며 신명을 불지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카메라는 인간화된다. “열려진 영화에 있어서 카메라와 대상은 서로 의지하며 또는 격렬하게 부딪히며 판을 이룬다. 카메라는 기계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화하는 것이며, 육화된 카메라는 대상과 갈등하며 동시에 화합한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진 않은, 다소 관념적일 수도 있는 이론이지만 장선우 감독의 이후 행보는 1980년대 초 그가 품었던 생각이 구체화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경마장 가는 길>(91)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너에게 나를 보낸다>(94) <꽃잎>을 거쳐 <나쁜 영화>(97)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의 영화는 보수적이며 견고한 사회에 던지는 폭탄이었다. <나쁜 영화>가 검열과 싸우고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는 진짜 안 변한다. 미치겠다. 난 계속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는데, 내 영화의 테마는 변화인데, 나는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처럼 억압과 고통이 많은 사회가 어디 있나. 사회 내부는 굉장히 복잡한데, 사회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는 굉장히 단순하고 독선적이다. 너무 억압적이어서 화가 난다.”



 
1980년대 중반 그의 파트너는 선우완 감독이었다. 영화계를 거쳐 당시 TV 드라마 PD였던 그는 <베스트셀러 극장>(MBC)에서 20여 편의 단막극을 만들었고, 이때 장선우 감독은 각본을 썼다(이후 <연>(88)이라는 단막극을 직접 연출하기도 한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서울 예수>(86. 이후 검열에 의해 <서울 황제>로 개명)라는 영화를 공동 연출했고,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데뷔작이 된다.

“이 영화는 우화이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제대로 개봉하지 못한 채 잊혀간 영화로서, 자칭 예수라는 사나이(김명곤)와 껌팔이 소년(안용남), 그리고 몸을 파는 김마리(오수미)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 시기 그는 <베스트셀러 극장>의 대본을 쓰면서 두 번째 작품을 준비했다. 과거 마당극 시절, 어떤 사건이 생기면 즉시 대본으로 옮기는 훈련을 해왔던 장선우 감독에겐, 그렇게 생성된 언어적 능력이 TV 드라마 대본과 시나리오를 쓰는 밑거름이 되었다. 실질적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시대>(88)에선 <서울 예수>의 우화적 화법이 ‘자본주의’를 대상으로 펼쳐진다. 김판촉(안성기)이나 성소비(이혜영) 같은 이름과, 회사명인 ‘막강 그룹’이나 술집 이름인 ‘성공시대’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사회적 관심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상을 충분히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괜찮은 평가를 얻으며 그에게 좀 더 편안한 제작 환경을 제공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씻김>(95)을 포함해 총 11편에 달하는 그의 필모그래피 이면엔, 영화화되지 못한 그만큼의 필모그래피가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시대> 전후로 그는 윤정모의 소설 <님>이나, 고문을 다룬 임철우의 소설 <붉은 방>을 영화화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나 광주 민주화 항쟁을 그린 연극 <금희의 오월>, 김향숙의 <겨울의 빛>, 김지하의 <밥>, 강승원의 <남한강> 등 그가 구상했던 프로젝트는 수없이 많다.  2000년엔 <바리 공주>를 위해 사막을 떠돌았고, 2005년엔 <천개의 고원>을 위해 몽골 지역까지 갔지만 두 프로젝트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만약 이 프로젝트들 중 절반이라도 실제로 영화화되었다면, 장선우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풍부하고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성공시대> 이후 그가 선택한 이야기는 박영한의 소설을 영화화한 <우묵배미의 사랑>(90)이었다. 영화평론가 이정하는 “그(장선우)의 영화는 대체로 어딘지 불완전하고 고전적 조화미에서 벗어나 있는 편인데 이 영화는 예외적으로 고전적 조화미를 갖추고 있으며 결점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우묵배미의 사랑>을 평가하는데, 이 영화가 보여준 민중의 삶에 대한 리얼리즘적 시선은 지금까지도 많은 관객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으며, 장선우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리얼리즘을 논하면 그 영화가 재미없다고 오인하는데, 이것을 충실하게 표현하면 얼마나 값지고 실감나는 감동을 주는지 알리려는 시도”로 <우묵배미의 사랑>을 자평했다.




장선우 감독은 <경마장 가는 길>부터 그의 ‘본색’을 드러내며 관객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하일지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고전적인 기승전결 구조와 결별한다. 이정하가 말하듯 “앞 부분을 빼놓고는 순서를 뒤바꿔도 상관이 없고 어떤 것들을 임의적으로 잘라내어 버리더라도 관계가 없다. 서사는 지리멸렬하며 파편적”인 영화가 바로 <경마장 가는 길>이었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는 순환적인 원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반복이라는 우리 삶의 진짜 형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거대 이념이 사라진 이른바 ‘1990년대적 상황’에 대한 방식이기도 하며, 개봉 당시 영화평론가 김홍숙은 “<경마장 가는 길>은 우리 영화로서는 새로운 실험이다. 수평 이동밖에 없는 카메라와 롱 테이크 그리고 행위 대신 대사 위주로 이끌어나가는 2시간18분짜리 영화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한 적이 없다”며 이 영화의 새로움을 지적했다.

특히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섹스’의 양상은 매우 낯설었다. 로맨스나 애정이 수반되지 않은 섹스. 장선우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R(문성근)은 프랑스에선 섹스의 충일감을 맛보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못한다. 섹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사실 우리 사회엔 섹스에 따라다니는 조건이 많다. 흔히 섹스를 남녀간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출세의 도구, 신분 상승의 기회인 거다. 섹스가 도구화, 신비화되어 ‘섹스 그 자체’는 터부처럼 여겨진다. 사회 자체의 혼돈처럼 섹스도 혼돈의 세계인 셈”이라고 말한다.

<경마장 가는 길> 이후 장선우 감독에 대한 지지자와 반대자는 급격히 갈리기 시작한다. 특히 <너에게 나를 보낸다> <거짓말>(00) 등의 영화들은 ‘성적 묘사’를 중심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은 매우 거셌다. 장선우 감독은 영화를 내놓은 후 항상 무엇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당대의 전위였고, 포괄적 의미의 정치적 영화였으며, 풍자와 비판 사이에서 날카롭게 도려낸 현실의 단면이었다. 그런 면에서 고은의 소설을 영화화한 <화엄경>(93)은 느닷없으며, 이 영화가 <경마장 가는 길>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작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엔 뭐 그게 대단한 것인 양 우쭐거렸던” 가장 아쉽고 창피한 영화라고 회고하긴 했지만, 당시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에게 매우 절실했던 작품이었다. “원작이 주는 매력도 크지만 시나리오 단계에서 형상화시킨 인물들이 나 자신에게 ‘고행을 시작하라, 영화에 눈을 뜨는 시기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화엄경> 다음에 그가 손에 잡은 소설은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였다. 어떤 연속성 없이, 관객의 기대를 비웃듯 좌충우돌하는 행보는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는데, <꽃잎> 때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같은 걸 반복하는 걸 워낙 싫어한다. <꽃잎>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시작했다. 돌아보지도 않았고. 다음엔 뭘 할 것인지 관심 있을 뿐이다. 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절실함 때문에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의 영화가 랜덤 방식의 비연속성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화엄경>을 통해 높은 차원의 철학적인 세계를 그렸다면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선 쓰레기 같은 하찮은 일상 속의 치부를 젊고 감각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반작용적인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높고 고상한 것을 그리거나 낮고 천한 것을 그리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느새,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말처럼 “현대 한국영화계가 어디까지 감독의 실험 정신을 용인해줄 수 있었는지에 관한 시금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벼운 포르노그래피’를 표방했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소설만큼, 아니 소설 이상으로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추악하고 절망적이며 쓰레기 같은 현실을 드러낸 장선우 감독. 그는 <꽃잎>에서 드디어 ‘1980년 광주’로 간다.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씻김>와 마찬가지로, <꽃잎>은 그에게 1980년대에 대한 씻김굿이었으며 진혼곡이었다. “하고 싶었던 소재를 다루었다기보다는 스스로를 씻어내고, 광주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 영화에서 <화려한 휴가>(07)처럼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지나치게 암시적이지도 않다. 소녀(이정현)을 통해 ‘유린 당한 광주’를 형상화하는 이 영화는, 소녀를 찾아 다니는 ‘우리들’의 존재를 통해 1996년의 ‘현재적 시점’에서 광주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꽃잎>이 개봉할 당시 한 인터뷰에서 장선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하고 싶은 건, ‘진짜’ 유치찬란한 것,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편안하고 쉽고 재미있고 예쁜 것이다. 어떤 모습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갱 영화도 한 번 해보고 싶고, <비트>(97) 같은 얘기도 하고 싶고…. 십대들의 처절한 감상적 고민들 같은 거다.” 그리고 나온 <나쁜 영화>(97)는, 10대들에 대한 영화이며 행려에 대한 영화이며 영화에 대한 영화였다.

<꽃잎>을 만든 후, 장선우 감독에겐 영화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영화라는 답답한 범주에 대해, 어떠한 분노가 있었다. 이런 반작용에서 시작한 영화가 <나쁜 영화>였으며,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극영화도 아닌, 둘 다를 희망하는 영화”였다. “다큐면서 다큐가 아닌 것인 셈이다. 그 경계를 부수고 싶었고, 경계를 넘나들고 싶었다. 나는 구분 짓고 경계를 만드는 게 너무 싫다. 형식은 소재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소재가 형식을 결정하는 거다. 종래의 방식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쁜 영화>는 모든 영화적 형식과 관습을 무시하는 ‘안티 영화’였다. 그는 촬영 전에 “가짜를 진짜처럼 만드는 데 짜증이 났다. 진짜를 위해 모든 가짜는 다 노출시킬 것이다. 때에 따라선 카메라도 프레임 안에 나오고, 마이크도 나오고, 배우가 카메라를 보고 하든 말든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촬영 당시 주인공 역의 임은경(좌)과 장선우 감독(우)

진짜 ‘나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막가파’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엔 묘한 리듬과 반체제적인 기운이 넘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무수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거짓말>이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02)보다도 강렬한 ‘가장 장선우적인 영화’일지도 모르며, 감독은 영화를 마치고 “더는 못하겠다. 목적도 없이 사막을 건너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장정일과 만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로 만든 <거짓말>(00)은, 지극히 자기 혐오적인 몸짓 속에 묘한 슬픔과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하지만 검열과의 지독한 싸움은 그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모호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세계로 날아간다. 33억 원의 제작비가 결국은 93억 원까지 늘어났고, 감독이 촬영 중간에 잠적하면서 온갖 험한 소문이 무성했으며, 마케팅 비용 포함 총 110억 원의 예산 중 10퍼센트도 회수되지 못하면서 ‘충무로의 대재앙’이 되었던 이 영화는,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 외적인 부분 때문에 화제가 되었고 결국은 현재까지 장선우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으로 남아 있다. 개봉 후 스스로 “불행의 도가니”였다고 표현했던 이 영화에서 장선우 감독은 21세기 사회상을 SF 장르 안에 담는다. “가상현실보다 더 가상현실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하고 가상현실하고 잘 구분이 안 된다. 그러면 세상이 뭔가, 가상현실과 다른 현실이란 게 뭔가. 그런데 실제로 우리 사회엔 그런 것에 대한 해석이 거의 없다. 그걸 내가 한 번 해본 거다.”

이후 <천개의 고원>이 제작비 마련에 실패한 후 장선우 감독은 제주도에서 4년째 살고 있다. 당분간 충무로를 떠난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행했던 수많은 도발들을 초월한 채, 붓다의 사상에 빠져 살고 있다(어쩌면 그의 차기작은 붓다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좌충우돌의 세월을 지나 이젠 암중모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선우 감독.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은 젊은(!) 그가 긴 재충전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관객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질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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