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쇼>를 그만 둔 1992년, 그는 이후 15년 동안 이어질 시사월간지 <말>의 영화평과, MBC FM의 ‘정은임의 영화음악’ 게스트가 된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한겨레 신문>에 매주 영화평을 쓰면서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한다.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에 ‘영화 마니아’라는 존재가 대학가와 시네마테크를 통해 서서히 문화적 파장력을 지녔던 때. 고아와도 같았던 젊은 시네필들은 그의 글을 스크랩하고 그의 방송을 녹음하면서 어떤 갈증을 채웠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 중, 당시의 정성일처럼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평론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땐 영화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려면, 내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남들이 보지 못한 영화를 보고 미리 나서서 호들갑을 떤다는 건데, 그건 저에게 중요한 전략이었어요. 왜냐하면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으니까. 누군가가 ‘죽이는 영화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직접 확인하고 싶을 거고, 그래서 수요가 생기면 공급되는 거잖아요. 1990년대엔 그게 저에게 필요했어요.”
지하에 숨어 있던 ‘영화 친구’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느낌.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 당시 그는 시네필들에게 일종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문화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업계와 결탁된 ‘짜고 치는 고스톱’ 식의 평론이 공공연히 자행되던 풍토에서 그는 작은 변화를 꿈꾼다. “문학에 비교하면, 영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대접을 받고 있었나요. 그들만큼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문학평론은 (어려워도) 참고 읽으면서 영화평론은 (조금만 어려워도) 못 참겠다는 그 문화가 저는 견딜 수 없었어요. 내가 읽은 많은 영화평들은 문학평만큼 우아했고 충분히 사색적이었고 통찰력이 있었는데…. 물론 내가 그 수준으로 쓸 수는 없지만, 흉내라도 내는 누군가가 하나라도 있으면 언젠가는 진짜로 그런 글을 쓰는 인간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좋은 방법은 아니고, 그러다 버림받을 수도 있는 방식이었지만, 누군가 시작은 해야 한다는 생각. 그 시작 지점이 저에겐 중요했죠.”
‘영화 1백주년’을 맞이한 1995년, 그는 <키노>를 창간한다. 9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지만,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때는 “좋은 동료들과 좋은 책을 만들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로드쇼>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잡지는 만든다는 것은 자본과의 싸움이었고, 그것은 창간 때부터 끝까지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99번의 마감을 통해 나온 책은 동시대 영화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었고, 그것은 지금 그때의 <키노>를 읽어보아도 느낄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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