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영화배우 전도연 - 평범을 가장한 비범


 



전도연에겐 ‘연기론’이 없다. <접속>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11편의 영화를 찍으며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그 어디에도 연기는 이렇고 배우는 저렇다고 정의 내린 적이 없다. 이건 ‘배우 전도연’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다. 이창동 감독, 송강호와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밀양>(07)을 제외하면, 그녀는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는,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딱히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다는 기준은 없는 것 같아요. 그때그때 다른, 나의 감성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선택했어요. 전작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생각처럼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거든요. 그저 순간순간 최선의 기회에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죠.” 사랑에 대한 갈증을 ‘인공 눈물’로 달래며 컴퓨터 앞에 앉는 외로운 ‘여인 2’(접속)으로 ‘신세대 멜로 대표주자’로 떠오른 뒤, 운명의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겁 없는 의사(약속)로 ‘멜로의 여왕’ 자리를 굳히고, 화장기를 지우고 산골마을로 들어가 수줍은 짝사랑에 달뜬 열일곱 살 소녀(내 마음의 풍금)가 되었던 과정은, ‘의도적인 변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녀를 움직이는 힘은 ‘감성’, 즉 배우의 본능이었다.

매 작품마다 완벽히 다른 인물로 나타나기에 “영화 속에 전도연은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건 대단한 오해다. “지금까지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솔직히 내 안에 있는 인물 중 하나예요. 내 안의 나를 끄집어내고 있었던 거죠. 나도 알지 못했던, 아마 배우가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전도연 속의 전도연들’은 매번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며 연속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굳이 ‘칸의 트로피’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 필모그래피만으로도 전도연의 비범함을 쉽게 증명된다.

하지만 세상이 그녀의 비범함을 알아채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도연 스스로는 “평범해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것은 그 비범함이 ‘주머니 속 송곳’이 아니라 ‘국보급 백자’ 타입이기에 그렇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는 전도연이 “공주를 가슴에 품고 사는 세상 모든 여자를 연기해왔다”며 전도연의 ‘평범을 가장한 비범함’을 묘사한다. “전도연이 분한 여성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 (중략) 말단 사무직 유니폼이 이렇데 착 달라붙는 여배우는 달리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 전도연은 평범하다고 눈속임할 수 있는 종류의 아름다움을 가졌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함께 한 감독들이었다. <접속>의 장윤현 감독은 “스타성이나 미모, 화려함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연기로 대성할 연기자”라고 평했고, <내 마음의 풍금>(99)의 이영재 감독은 “화려한 젊음과 미모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넒은 연기폭으로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가졌다. 무엇보다 ‘연기’하는 전도연은 예쁜 배우다. 긴 생명력을 예감한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배우가 아닌 전도연’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배우가 되기 전 그녀는 ‘배우 전도연’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언니 오빠와 터울 많은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여간해선 남의 앞에 나서지 않는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 우연히 잡지 모델에 발탁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CF를 통해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서는 재미에 익숙해졌다. “TV를 통해 나 자신을 확인하고 대중에게 인식되는 것이 즐거웠어요. 아주 단순한 시작이고 동기였죠.” 서울예술대(구 서울예전)에 원서를 낼 때도 거창한 목적은 없었다. 친구 따라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게 합격했다는, 수많은 연기자와 연예인들에게 있는 운명적 에피소드는 전도연에게도 해당된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탄탄대로가 펼쳐진 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불합격. 하지만 배우의 운명은 그녀를 졸졸 따라왔다. CF에서 해맑게 웃던 그녀를 눈여겨봤던 PD의 추천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합류하며 배우 신고식을 치른 그녀는 <종합병원>(94) <사랑의 향기>(94) <사랑은 블루>(94) 등 꾸준히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으며 연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만 해도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야망도, 연기에 큰 뜻도 없었다.

영화<접속>중(1997)
  
영화 <구미호>(94)의 오디션에 관한 충격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신씨네의 신철 대표는 그녀에게 <구미호>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난 그녀에게 신철 대표가 영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시간이 괜찮으면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제안하자 전도연은 시계를 보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안 되는겠는데요. 저 약속 있어서 가야 해요.” 그리곤 해맑게 인사를 하곤 떠났다는 것. 그녀에겐 꼭 연기를 통해 성공해야겠다는 강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덕이었어요. 그 기회들이 나를 배우로 성장시켰던 것 같아요.” 이후 그녀는 <젊은이의 양지>(95)에서 탄광촌에서 자라 소설가로 성공하는 문학소녀 임종희 역을 맡으며 서서히 배우로서 존재감을 알렸고, 1996년엔 <리타 길들이기>로 연극에 도전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연기에 승부욕이 싹트기 시작했다.

<접속>은 그 즈음 찾아왔다. 10장 정도의 시놉시스로 충무로를 돌아다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었다. 그간 충무로의 러브콜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사양했지만, ‘여인 2’ 수현 역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전도연의 자신감을 의심했다. “<접속>은 내게 투지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에요. 나는 늘 나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디에서 온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늘 나 자신은 ‘베스트’였어요.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었죠. 그런 나를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고, 부정했어요.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죠.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늘 배우였음을.” 선택은 쉬웠지만 과정은 고단했다.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기 위해 홀로 이를 악물었다. 그 결과 한석규에게 “연기에 대한 본능적인 ‘끼’와 감성이 놀랍다”는 감탄을 얻어냈고, 그해 각종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거머쥐었다. 모두들 ‘의외의 발견’이라고 호들갑 떨었지만, 전도연은 시상식장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접속> <약속>(98) 등으로 전도연에겐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다들 그녀의 차기작이 ‘어떤 멜로’일지 궁금해 하던 차에, “전도연이 벗는다”라는 헤드카피가 나붙었다. 전도연이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2막을 연 작품으로 꼽는 <해피엔드>(99). 당시 인터뷰에서 그녀는 “고민하고 망설였지만 후회도 없다”고 했다. “처음엔 뭐 이런 여자가 있나 싶었죠. 정부를 만나기 위해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늦은 밤 집을 나서는 여자라니….”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용서 받을 수 없는 여자 최보라의 외로움이 그녀의 감성을 건드렸다. “그런 영화 찍으면 시집 가기 어렵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을 전도연은 “딸 시집 잘 보내려고 배우 시킨 건 아니잖아요”라며 설득했다. 노출 신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바람난 유부녀는 기대 이상으로 비정했다. 전도연은 “내가 배우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라는 말로 <해피엔드>를 정의한다.

이때부터 전도연은 세간의 기대를 깨뜨리는 선택을 계속했고, 언제나 우려를 감탄으로 돌려놓았다. <해피엔드> 이후 더 센 파격을 기대하던 관객들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00)에서 요구르트 뒷꼭지를 깨물어 쪽쪽 빨아먹으며 소박한 데이트를 즐기는 그녀에게 ‘한 방’ 먹었다. 소시민의 로맨틱 코미디로 잠시 쉬어가나 싶더니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02)에선 ‘피눈물 나는 액션’을 선보였다. “제가 독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첫날 서울액션스쿨에 갔을 땐 완전히 죽는 줄 알았어요. 푸쉬업을 3천 번이나 했으니까요. 여배우를 죽일 셈이냐고 류승완 감독에게 툴툴거렸지만, 시키는 건 다 했죠. 주변에서 놀려요. 너는 ‘못한다, 안 한다’ 그러다가도 막상 현장에 던져놓으면 다 한다고.”

영화<인어공주>중(2004)

일곱 번째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03)에서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장을 던졌을 땐, 기대와 함께 우려도 높았다. 사내와 눈 한 번 맞추지 못하고 평생을 수절해 온 숙 부인은 전도연에게서 느낀 적 없는 낯선 여인이었다. 애교 섞인 비음과 똑 부러지는 발음이 섞인 그녀 특유의 말투가 과연 사극에도 맞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숙부인의 감정은 제 안에도 있었어요. 자신도 몰랐던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이 마음에 와 닿았고요. 여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제처럼 그녀의 감정은 옳았다. 그녀는 여덟 폭 치마 아래로 내딛는 발끝에도 기품과 우아함을 담은 숙부인이 되었다.

박흥식 감독과의 두 번째 영화 <인어공주>에서 넘어야 할 산은 고된 물질과 1인 2역.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였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스태프에 의해 끌려 나오기 전까지 바다 속에서 버텼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현장에 가요. 본능적으로 죽을 힘을 다 해요. 연기를 끝내고 나서 ‘다시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순간 최선을 다 했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거든요.”

어느새 전도연 앞에 당연하다는 듯 ‘한국 최고의 여배우’라는 수식이 붙었고, 기대가 높아질수록, 그녀는 더욱 철저해져야 했다. 세련되고 쿨한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대담하게도 ‘통속 멜로’를 표방한 <너는 내 운명>(05)은 황정민과 전도연의 시너지가 폭발한 작품. 박진표 감독도 “한동안 전도연이 ‘멜로는 안 한다’고 할 만큼, 그녀의 모든 것을 뽑아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여주인공 은하는 누가 봐도 ‘전도연’ 외엔 답이 없을 만큼 그녀에겐 맞춤옷 같은 인물이었다. 영화는 흥행 성적과 평단의 칭찬을 양 손에 쥐었지만, 전도연은 마뜩치 않았다. 그녀는 최근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촬영 중의 일화를 들려줬다. “감독님이 면회실 장면에서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을 갑자기 연출했어요. 겁나 신경질 냈죠.(웃음) 제가 모르는 부분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장면은 어려운 신인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알게 되니까, 화가 났어요. 지금도 불만족스러워요. 관객은 모르실지 몰라도 그 장면에서 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하지 못했어요. 무늬만 절실해 보이고, 절실하지가 않은 빈틈이 보여요. 남들은 몰라도 제 눈에는 곳곳에 놀고 있는 손이며 디테일이 보여요.”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큼이나, 어느 순간 전도연이 “연기를 잘했다”는 건 놀랄 만한 소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밀양>(07)은, 정체된 것 같았던 스스로에게 던지는 선전포고였다. 전도연은 처음으로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선택했고, 시나리오를 받고도 신애라는 캐릭터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너무 감이 안 와서 감독에게 질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시나리오로는 이해가 안 됐지만,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읽으니 신애의 마음이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전도연은 꽉 쥐면 부러질 듯 연약한 육체에 신애의 고통을 담고 거꾸러졌다. 모든 장면에서 신애의 고통이 배어 나와 관객의 심장에 박히지만, 그 중에서도 섬뜩할 만큼 놀라운 건 종찬(송강호)을 찾아가 위악을 떨던 신애가 밤길을 걸으며 중얼거리는 신이다. 그녀가 절대 경험했을 리 없는 몸짓이지만, 전도연은 진심으로 겪고 있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를 <밀양>을 통해 나는 일찍 본 거에요. 이 영화를 통해, 상황은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해진 그릇에 담기 어려운 배우였기 때문에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이창동 감독은 “그녀는 진폭이 큰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내가 만약 그녀를 괴롭혔다면, 관객도 예상하지 못한, 나도 예상하지 못한, 나아가 전도연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영화에 그 감정이 순간순간 다 담겨 있다. 정말 예상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배우”라고 평가한다.

송강호의 평가는 이렇다. “워낙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너무 강해서 겁이 날 정도로.” 전도연의 본능적인 연기와 에너지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생애 첫 해외영화제에서 시상식 단상 위에 섰다. 알랭 들롱에게 트로피를 건네 받은 전도연은 눈부시게 웃었다. 어쩔 줄 모르는 감격의 눈물은 없었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 대신 ‘월드 스타’로 수식어가 바뀌었고, 영화산업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예술인 50’에도 이름이 올랐다.


해외 영화계에서도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정작 전도연은 초연하다. 칸영화제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도 “하도 언론에서 기대를 부풀려 놓아서, 그게 걱정이에요. 빈손으로 공항에 도착하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주신 상을 받고 돌아 왔어요’라고 말할 생각”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 초연하다. “물론 영광이지만, 칸영화제의 상은 내가 원했던, 꼭 이루고 싶던 나의 목표가 아니었어요. 나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보여줄 게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저 제 변화의 과정 중 하나이며, 한 순간 잠깐 반짝했을 뿐이죠. 굉장히 영광스럽지만 만족하지는 않아요.”



전도연이 <밀양>에 감사하는 건 ‘칸의 트로피’가 아니다. “전도연은 이제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단정했던 사람들에게 “전도연은 여전히 무궁무진하고, 아직도 궁금한 배우라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결실이었다. <밀양>을 끝내고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08)로 날아든 건, 그녀가 얼마나 초연한 배우인지를 보여준다. “일단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희수의 감정도 와 닿았고요. 그리고, 건방지다고 하실 진 모르겠지만, 빨리 ‘칸의 여왕’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어요.” <밀양>으로 문을 연 ‘배우 전도연’의 연기 인생 3막은 그렇게 올랐다.

“월드 스타요? 칸 영화제에서 영화 한 편으로 상 받았다고 월드 스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앞으로의 일이 중요하니까요. 그렇다고 앞으로도 월드 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건 아니고요. 몇 편 시나리오를 받긴 했지만, 아직 합작영화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언어적 문제도 있고요. 게다가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는 데, 그녀가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한국영화든 합작영화든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하다는 원칙은 여전하다. 대신 그녀 인생을 뒤흔든 큰 변화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데뷔 때부터 “제 꿈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예요. 결혼하면 일을 그만 두고 가정에만 충실할지도 몰라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녀가 드디어 결혼을 했고, 올해 초 예쁜 딸을 낳았다.  “글쎄요…. 개인적 삶의 변화가 배우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아직은 큰 변화는 없어요. 하지만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고 나니, 생의 우선 순위가 나 자신이 아닌 경우가 있다는 것 정도?”

소스라치게 무거운 <밀양>에서조차 ‘멜로의 정서’를 찾아내고야 마는 ‘사랑 지상주의자’가 가장 가까운 사랑의 대상을 둘이나 얻었으니, 한동안 그녀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영화란 즐길 수 있는 것이고, 좋은 연기란 즐길 줄 아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로 미루어볼 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다. 관객들만큼이나 ‘다음 작품의 전도연’이 궁금한 그녀 스스로가 길게 자리를 비울 리 없으니까. 게다가 이젠 ‘즐기는’ 경지(?)라니, 그녀의 마음은 벌써 차기작의 촬영장으로 향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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